사회적 상상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 상상력의 회복과 심층서사의 변화를 통한 사회 혁신과 전환
사회복지를 전공하면서 어떤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결함이 아닌 개인과 환경의 상호작용에서 찾는 시선을 배웠다. 졸업 후 차별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사람이 될 자신은 없었다. 다만 나의 무지와 혐오가 다른 이의 삶을 침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소외된 사람들의 입장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면 바라는 삶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예감은 들어맞았다. 장애인단체에서 일한 5년간 세상을 인식하는 감각이 달라졌다. ‘여기는 휠체어가 못 들어가겠네’, ‘이 영화를 시·청각 장애인도 같이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하는 식이다.
소셜섹터에서 일하면서 가장 근사한 점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고민할 동료와 예산이 있다는 점이다.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던 문제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소환되고 변화가 생기는 과정에 함께한다는 사실이 이 일의 가장 큰 매력이다. 최근에는 키오스크에 장애인 접근성을 위한 정당한 편의 제공이 의무화됐고, 시·청각 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치봄영화로 최신 개봉작인 ‘리볼버’가 상영됐다.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에 쾌재를 불렀다.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할 때는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와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말을 떠올린다. 막막함이 지속될 때는 장애, 아동, 여성, 환경, 동물권, 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읽는다. 활동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겪어 낼 분투를 떠올리며 이어달리기하듯 자리에 앉는다. 나도 그들 중 하나라는 사실이 마음 디딜 곳이 된다. 소셜섹터 생태계 안에 속해 있는 감각이 내일을 버틸 힘이 된다.
한바탕 바쁜 일이 지나고 텅 빈 기분을 느끼는 시기가 있었다. 연이은 행사와 함께 기관에서 매월 발간하는 정책리포트 원고를 마친 후였다. 정책리포트 제목이 “함께 알아야 할 이야기, 속 터지는 내부기관 장애인의 현실”이었는데, 장애 인구의 6.1%에 불과한 내부장애인 이슈를 다루려니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누군가 이 주제를 검색한다면 내가 쓴 글이 나올 거라는 생각에 제대로 써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 당사자 인터뷰를 하면서 속이 터지는 현실에 함께 속앓이해서인지 머릿속에 경보가 울렸다. 잠시 쉬면서 나를 더 챙겨야 할 때다.
다시 동력을 찾기 위해 다음세대재단에서 운영하는 2030 소셜섹터 활동가들을 위한 대화형 네트워크 프로그램 ‘D.MZ 정규모임 5기’에 지원서를 썼다. 지원자가 많다고 해서 선정되리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운이 따랐다. 근사한 공간에서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네트워킹할 기회가 무료로 주어지다니 감사한 일이다. 주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역할이었다가 행사를 즐기는 참여자가 되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다음세대재단과 함께한 비영리스타트업 연혁이 빼곡히 벽면을 장식한 동락가에서 비건 메뉴가 포함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몰입을 방해하는 것들을 무기로 칭하며 종이에 적어 무기창고에 봉인하고, 편안하고 안전한 대화를 위한 약속문을 읽고, 진행자가 정성껏 준비한 질문에 성심껏 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 하나하나가 귀했다.
모임을 가기 전에 지인에게 “요즘 배터리 10%인 핸드폰 같다. 자고 일어나도 충전이 안 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충전 케이블이 고장 난 건 아닐까.” 하며 울상이었는데 D.MZ에서 경험한 환대는 일상에 고속충전기, 보조배터리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하는 마음’으로 자기 일에 진심인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를 응원하는 동안 가장 크게 위로받은 것은 나 자신이었다.
D.MZ 정규모임 5기 활동은 마무리되었지만 단체채팅방을 통해 후속 모임이나 소속 단체에서 진행하는 사업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소셜섹터에서 근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절로 박수가 나온다. 활동가들이 연결되어 서로를 응원하는 시간은 분명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로 이어질 것이다.
활동가를 정의하는 수많은 말 중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말이 가장 와닿는다. 쉽게 바뀌지 않는 세상에서 활동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잃지 않고 변화를 위한 행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서로를 연결하는 자리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