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가 AI와 함께 자라는 다섯 단계

조성도 마이오렌지 총괄대표

매주 월요일 아침에 오렌지레터를 발송한 지 8년째입니다. 그러면서 마주친 것은 우리의 임팩트를 드러내는 소식이 아니라, 같은 자리를 다시 모집하는 채용 공고였습니다. 비영리 종사자의 절반 이상이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난다는 통계 뒤에는, 매주 같은 공고를 다시 올리는 단체들이 있는 셈입니다.

비영리는 사람으로 일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구하기도, 머무르게 하기도 어렵습니다. 종사자의 52%가 3년이 되기 전에 이직하고, 떠나는 이유 1위는 비전이 보이지 않아서입니다(기빙코리아 2021). 최근 3년간의 오렌지레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채용 공고의 절반 이상이 반복 공고였습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업 단위로 재원이 흘러오니 경력이 쌓이지 않고, 행정이 반복되니 사람이 지치고, 임팩트가 보이지 않으니 비전이 흐려집니다.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비영리를 위한 특화 솔루션이 부족한 상황에서 필요한 디지털 도구를 직접 만들 수 없으니, 활동가는 행정과 반복 작업에 묶이고 그것이 이직으로 이어집니다. AI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입니다.

비영리 현장에서 그 가능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다섯 단계로 정리해 봤습니다.

1단계는 AI를 옆에 두고 묻고 배우는 단계입니다. 한국 비영리 활동가의 92.7%가 이미 이렇게 AI를 쓰고 있습니다(아름다운재단 2026년 조사).

2단계는 효율화입니다. 회의록, 보고서, 후원자 안내 등 매일 하던 일을 AI가 옆에서 함께 합니다. 우리는 AI를 사람을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 곁에 두는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반복 행정이 줄면 활동가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시간을 더 쓰게 됩니다.

3단계에서는 못하던 일이 가능해집니다. 세 갈래에서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도구가 없어 못했던 일(자체 대시보드 등), 자금·인력이 부족해 엄두 못 냈던 일(컨설팅이 필요했던 임팩트 측정, 데이터 분석 등), 전문성이 없어 못했던 일(디자인, 통계, 법률·세무 검토 등). 모두 자기 업무에 맞춰 AI와 함께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비영리는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과 해결하는 사람이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활동가는 문제를 알았지만 풀 도구를 직접 만들 수 없었고, 외주에 맡기면 맥락을 이해시키느라 시간이 걸리고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비영리가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의 상당 부분이 그 분리 때문이었습니다. AI는 문제를 인식한 사람이 그것을 해결하는 사람이 되도록 해줍니다. “내가 인식한 문제를 내가 해결한다”는 자기 효능감, 그것이 ‘비전이 보이지 않아 떠난다’는 이직 사유에 대한 응답이 될 수 있습니다.

4단계에 이르면 조직이 도약합니다. 활동가 손을 떠나 단체 차원으로 옮겨가 AI를 전사적으로 도입하고, 판단 환경을 정비하고, 미션에 맞춰 활용의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마지막 5단계에서는 생태계가 함께 움직입니다. 한 단체가 만든 도구를 다른 단체가 받아 쓰고, 여러 단체가 모은 데이터를 비영리 섹터가 함께 봅니다. 한국 비영리에는 공동 활용 가능한 독자적인 데이터셋이 거의 없어 섹터 차원의 AI 도구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개별 후원자 정보가 아닌, 패턴이나 성과지표 같은 익명화·집계 데이터를 생태계 차원에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한 단체가 가지면 흩어지지만, 함께 가지면 모두의 발전을 위한 도구가 됩니다.

물론 우려도 있습니다. AI는 잘못된 답을 내놓을 수 있고, 학습 데이터의 편향을 그대로 옮길 수 있으며, 개인정보 처리도 문제가 됩니다. 모두 정당한 우려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원칙이 필요합니다.

첫째, 사람이 주요 과정에 계속 개입합니다. AI에게 문제 정의, 성공 기준, 윤리를 맡기면 안 됩니다. AI가 빠르게 처리할 때, 사람은 방향과 판단과 책임을 맡습니다.

둘째, 리더가 안내자 역할을 합니다. 한국 비영리의 조직 AI 도입률은 22.81%에 불과합니다(다음세대재단 2026년 조사). 활동가가 조직보다 앞서가는 셈입니다. 더 주목할 점은 막연한 윤리 가이드라인이 오히려 활용을 억제한다는 사실입니다.

리더가 할 일은 규제가 아니라 판단 환경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입력 가능한 정보의 기준을 정하는 것, AI의 결과물을 검증하고 사람이 책임진다는 약속, AI 도입으로 확보한 추가 시간을 어디에 투입할지에 대한 결정이 리더의 역할입니다.

AI라는 동료는 이미 비영리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함께 일할지 정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 조성도 | 마이오렌지 총괄대표
소셜 섹터 소식을 매주 전하는 뉴스레터 ‘오렌지레터’ 발행인이자, 소셜 임팩트 특화 AI ‘오렌지임팩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데이터와 AI로 비영리가 본연의 임팩트 창출에 집중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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