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사 경쟁’에서 이탈한 이유

구본권 AI와리터러시연구소 대표

저는 오랫동안 신문기자로 일했습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정보기술 분야를 취재하게 되었는데, 마침 아이폰이 등장해 스마트폰 세상이 펼쳐지던 시기였습니다. 그 분야에서 제가 하는 일은 주로 최신 디지털 기기 출시 경쟁과 그 스펙을 비교하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폰이 좋은가, 옴니아폰이 좋은가?”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저도 유사한 보도에 뛰어들었습니다.
날마다 최신 기기를 소개하고 비교하는 기사를 쓰던 중 문득 회의감이 찾아왔습니다. “기술 경쟁이 진행될수록 결국 가장 최근에 나온 신제품이 더 좋은 것 아닌가?”, “기기간 스펙 비교를 하는 경쟁에서 내가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만난 겁니다. 기자는 자신만의 취재를 통해 차별적 기사를 보도하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직업입니다. 그런데 내가 있으나 없으나 차이가 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니 회의감에 빠지게 된 거죠.

그런데 “과연 사람들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최신 기기 출시와 기기간의 스펙 비교일까?”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전반적 품질 수준이 높아질텐데, 그때에도 기기간 성능 비교가 의미 있을까? 냉장고,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의 경우 과거엔 특정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강했지만, 경쟁이 펼쳐지면서 제품간 기능 차이가 무의미해졌지요. 저는 “내가 보지 못하는 다른 중요한 게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냉장고를 바라보았습니다. 냉장고가 나의 식탁과 식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봤습니다. 냉장고를 쓰게 되면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식생활과 일상의 재편이었습니다. 며칠전 먹던 음식도 계속 먹고, 어떤 식재료는 몇 달 뒤에 냉동고에서 꺼내 먹습니다.

냉장고처럼 “스마트폰을 쓰게 되면서 나와 사회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니, 주변에 기사 아이템이 차고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기자와 언론은 여전히 발생 사건과 보도자료에 기반해 기사를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기기 과의존으로 인한 중독,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기술윤리 등 정보기술 사회가 가져오는 새로운 현상을 집중적으로 취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쓴 기사의 영향력과 별개로, 저는 디지털 기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논의를 보도하는 일에 뛰어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사람과디지털연구소’라는 조직을 신문사에 설립했습니다. 이는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졌고 저는 관련한 책을 해마다 1권씩 내고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관점으로 보고 있는 대상을 다르게 보고 질문하면서, 저만의 관점과 일을 찾은 셈입니다.

AI는 사무직은 물론 다양한 전문직의 업무도 빠르게 대체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를 쓰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법률 문서를 검토하는 일을 AI는 이미 사람보다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합니다. 많은 조직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AI가 우리 일을 대신해줄 거야”라는 막연한 낙관, 혹은 “우리 같은 소규모 조직이 AI를 어떻게 따라가겠어”라는 체념이 그것입니다. 둘 다 위험한 오독입니다.

저는 디지털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들여다보며 중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디지털 기술은 인간관계와 사회의 ‘기본 설정 값(default setting)’을 바꾸는데, 사람들은 질문하지 않고 빠르게 적응하려고만 한다”는 겁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기계가 제시하는 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스스로 질문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기기는 똑똑해지지만, 사람은 어리석어지는 거죠. 검색엔진이 기억의 외주화를 낳았듯, AI는 사고의 외주화를 촉진합니다.

비영리 조직과 활동가는 ‘질문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대부분이 ‘불가피한 현실’로 수용하고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문제에 대해서 “다른 방법은 없을까?”라고 묻고 창의적 상상을 발휘하는 일입니다. 정답, 모범답안이 있을 수 없는 질문입니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책을 줄 수 없습니다. AI는 과거 데이터로 훈련받았습니다. 전례 없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비영리 활동가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데이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상상력입니다.

기계가 대답을 쏟아낼수록, 사람은 더 좋은 질문을 품어야 합니다. AI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모두에게 주어진 새로운 미션입니다.

 

✍🏻 구본권 | AI와리터러시연구소 대표

한겨레신문에서 정보기술 담당 기자를 지내며, 사람과디지털연구소를 설립해 소장으로 일했습니다. 사람이 먼저인 디지털 세상을 꿈꾸며, 기술에 압도당하지 않고 기술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AI시대, 강력한 개인이 온다> <로봇시대, 인간의 일> <유튜브에 빠진 너에게>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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