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대신하는 AI, 돌봄을 되찾는 활동가

박상원 사단법인 늘픔가치 대표

“누가 좀 대신 기록해줬으면 좋겠어요.”

현장에서 만난 한 약사의 이 말은, 케어링노트를 만들게 된 출발점이었다.

복약상담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약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건강과 일상을 함께 살피는 과정이다. 늘픔가치는 병원과 약국에서는 평균 4.5분에 그치는 복약상담의 시간을 30분으로 확보하여 처방약 검토 뿐 아니라 부작용 확인, 약 먹는 습관 개선, 생활습관 안내까지 포함하는 건강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이 시간을 통해 환자가 약으로 인한 불안과 걱정을 줄이고, 건강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정작 상담의 상당 시간은 ‘기록’에 쓰이고 있었다. 30분 상담이 끝나면 30분 가까이를 약물 내역을 적고 상담내용을 정리하는 데 사용해야 했다. 그만큼 사람을 바라보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다.

비영리 현장은 종종 이런 구조 속에 놓인다. 좋은 일을 하고 싶어 시작했지만, 행정업무와 기록, 보고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사람을 위한 일’이 ‘일을 위한 일’로 바뀌는 순간이다. 활동가의 헌신과 과로에 의존하여 이 구조를 지속하고 있다.

“기록을 대신해줄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AI를 활용해 상담 내용을 자동으로 기록하고 요약하는 기능을 도입했다. 그 결과는 단순한 효율 개선을 넘어섰다. 기록 시간이 줄어들자 상담의 밀도가 달라졌다. 약사는 더 오래 눈을 마주보고, 더 깊이 질문하고, 더 세심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상담의 중심이 ‘정보 전달’에서 ‘관계 형성’으로 이동했다. 도입 이후 더 많은 복약상담이 가능해졌고, 더 많은 주민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변화는 방향이었다. 이전에는 기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던 순간들이, 이제는 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한 시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케어링노트를 사용한 마을약사들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제 기록은 충분히 남기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기록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복약상담 기록은 쌓였지만, 돌봄은 여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약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다양한 주체가 한 사람을 돌보고 있지만, 각자의 기록은 연결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욕심이 생겼다. 케어링노트가 단순한 ‘복약상담 기록’을 넘어, 다양한 돌봄 제공자가 함께 사용하는 ‘진정한 돌봄의 기록’이 될 수는 없을까. 환자를 중심으로 여러 주체가 기록을 공유하고 함께 작성하는 구조, 그리고 그 기록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보여주는 데이터가 되는 구조. 그것이 가능해진다면, 돌봄은 단편적인 개입이 아니라 ‘이어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이 질문은 케어링노트 2.0으로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과정 또한 AI를 활용해 진행할 계획이다. 기록을 남기는 도구에서, 돌봄을 연결하고 설계하는 도구로 나아가는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AI는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기술로 이야기되지만, 현장의 경험은 다르다. AI는 일을 없애기보다, 우리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기록을 대신해주는 기술 덕분에 우리는 다시 사람을 만나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 만남을 ‘이어지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비영리 활동가에게 AI는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가 아니라 방향성을 지켜주는 도구이다.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AI를 쓴다.

 

✍🏻 박상원 | 사단법인 늘픔가치 대표
공동체 약국 늘픔약국에서 활동해왔고, 지금은 사단법인 늘픔가치의 대표를 맡고 있다. 늘픔가치는 안전한 의약품 이용환경을 만드는 비영리스타트업이다. ‘마을로 향하는 약사들’이라는 슬로건 아래, 의료 취약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약료 서비스, 약물 안전교육, 폐의약품 문제 해결 등의 다양한 마을약사 활동을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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